교토사찰 순례 둘째 날은 마음의 정원을 걷는 시간입니다. 사유의 정원이 펼쳐지는 곳 엔코지, 번뇌와 생각을 정돈하는 가레산수와 감춰진 감정이 물결치는 연못을 마음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텐쥬안, 난젠지,젤린지를 음미하겠습니다. 내 삶의 구조는 어떤 아치와 문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산몬의 계단을 오르며 인생도 한 걸음 계단 위로 올라보고 수로교 아래 흐르는 물처럼 마음속 흐름을 느껴봅니다. 나는 지금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내 속엔 어떤 정원이 숨어 있나?, 내 삶의 아치는 무엇이며 그 아래 흐르는 물은?
젤린지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텐쥬안은 내 안을 들여다보게 하며, 난젠지는 내 주변을 구조적으로 읽게 하는 서로 다른 선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첫날의 고야산(진언종.밀교)의 풍경은 거대한 건축, 만다라적 배열의 형태로 신비롭고 성스러운 침잠으로 우주와 연결되기 즉, 우주고 향한 문을 열던 시간이었다면 둘째 날은 정원과 마루, 빈 공간의 형태에서 좌선과 직관을 통해 간결한 일상의 깨달음을 체험하는 자신안의 우주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주를 닮은 내 마음을 천천히 읽어가는 길에서 마음 하나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수행자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결국 모두 한 사람의 살아있는 마음에서 밀교든 선종이든 시작되었음을 기억합니다.
엔코지로 향하는 골목 어귀, 지장보살을 만나다
아침 책상 앞으로 출근, 교토사찰순례 둘째 날의 여정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열고 ChatGPT 와 티스토리에 접속합니다. 글이 태어나는 자궁같은 내면의 대화를 chatGPT에 연결하고 티스토리에 타자를 치는 순간 백지의 바다는 고요한 물결처럼 일렁이고 그 안에서 문장 하나가 숨을 쉽니다. 감정은 물의 체온을 닮아 데워지고 마음의 중심으로 스며듭니다. 불현듯 一心을 통한 廓徹大悟가 태어납니다. 순례를 마치고 텅 빈 그곳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 수행공동체에서 부여 받은 소임을 해 나가기 위한 교육이 있었습니다. 내가 속한 지역의 활동을 취재와 인터뷰를 하고 기록하는 일인데요, 기사를 쓰기 위한 사진활동을 배웠습니다. 교육중 인상 깊은 내용은 기술적인 것보다 사진의 가치와 역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의 가치는 기억과 기록에 있고,"사진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직접 부딪치기 싫어하는 것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역활을 한다" 였습니다. 이번 순례중 가장 갈등한 것이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마음과 공동체 활동에 폐를 끼치지 말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사진의 역활을 배우니 걷고자 하는 길이 저절로 열리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나는 왜 사진을 찍게 되었나? 물음이 시작되었고, 첫 아이의 성장과정을 담았던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첫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한 발 떼는 아이가 대단하게 느껴져 환호를 했던 기억, 임파선이 부어 병원에 일주일 입원하게 되어 새 신발을 침상에 두고 바라보기만 했을 때의 안타까움, 첫 눈이 내리는 오후 빨간 코트를 입은 아이의 함박 웃음에 행복했지요. 아마도 사진찍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같습니다. 아이와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것 동시에 아이의 기록이자 역사로 그 사진은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곁에서 떠났을 때 사진을 들여다보는 행복에 눈물 짓던 중년의 기억도 따라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소천하시면서 내게 남긴 유일한 유품은 나의 성장사진 앨범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앨범 사진들을 보면서 어머니 기억속의 행복을 얼마나 그리워 하셨을까요. 사찰순례보다 마음의 순례에 닿은 오늘 아침은 여행의 기록은 뒷전이고 왜 옛 추억을 건드리고 있을까요?
그건 이 여행이 단지 장소를 옮긴 이동의 기록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고 오래된 기억의 문을 '툭'하고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엔코지의 골목, 정원의 침묵, 불식암의 모릅니다. 그것들은 모두 밖에 있는 장면인 동시에 안에 있는 어떤 오래된 나를 만나게 해주는 창이기도 합니다. 교토사찰순례 둘째 날의 여정에서 어머니의 앨범을 첫 아이의 걸음마를 기억하고 사진이 품은 온기를 되짚고 있습니다. 그건 장소가 아니라 내면의 문을 연 것이지요.


사찰순례 둘째 날 아침, 전날 이른 새벽부터 강행군을 이어온 피로가 신기할 만큼 말끔히 가셨습니다.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호텔 식당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는 조심스레 담아낸 '쿄카이세키' 도시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절제된 모양새로 가지런히 놓인 고등어와 오이절임, 부드러운 두부와 계란 요리는 한 점 한 점이 마치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지 무엇을 먹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먹는가를 되묻게 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음챙김 명상이었습니다.
조용한 공간은 교토의 전통 색채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어 있었고, 식사를 대하는 태도마저 자연스럽게 차분해졌습니다. 함께 나눈 대화 중 인상 깊었던 건, 요즘 일본에서는 쌀값이 세 배 가까이 올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기후 변화와 인건비 상승, 유기농 전환 등이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급 쌀 브랜드를 고수하는 일본의 식문화 속에서, 밥 한 공기의 무게는 단순히 맛에 그치지 않고 농부의 땀과 토양의 품격을 담은 예술처럼 여겨졌습니다. 매 끼니마다 빠지지 않던 고등어 요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다가 없는 도시에서 고등어를 신선하게 먹기 위해 소금에 절여 보관하던 지혜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 한 점 속에는 수백 년의 시간과 생활의 지혜가 곁들여져 있었고, 그것이 하루를 여는 첫 맛이 되었습니다.
엔코지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8시 30분 출발하여 맑은 날씨, 6월의 초록 풍경에 감사했습니다. 엔코지는 이번 여정의 사찰들 중에서 유일하게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느린 걸음으로 20분 남짓, 마을을 가로지르며 걷는 길은 정갈하게 정비된 시골 풍경이 펼쳐지는 소박한 골목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이 마을 자체가 마치 하나의 사찰처럼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자락이나 독립된 터에 자리해 고요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비해, 엔코지는 사람들의 일상이 오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따뜻하고 익숙한 기운이 어쩌면, 내 무의식이 오랫동안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엔코지가 품은 역사를 떠올리면, 이 위치의 의미는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이 사찰은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으로 창건된 학문과 수행의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후시미에 세워졌다가 이후 교토로 이전되었으며, 교토 최초의 활자 인쇄소인 간에이자시쇼도 함께 설립되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단지 무력으로 시대를 다스린 권력자가 아니라, 마음의 다스림을 고민한 내면의 통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유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남천선사와 같은 선사와 교류하며 선종의 법문을 가까이서 들었습니다. 왜 그는 선(禪)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을까요. 선은 침묵과 행동의 철학이며, 말보다 마음을 닦는 가르침입니다. 전쟁이 끝난 평화기의 무사들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칼이 아니라 마음의 검이었고, 선은 바로 그 정신적 무장을 가능케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에야스는 무사 계급을 위한 정신적 기반으로 선종을 도입하고, 엔코지를 공부하는 무사의 공간으로 남겼던 것입니다. 단지 교육기관이 아니라, 스스로를 닦는 수행의 공간으로 남겨진 엔코지는 지금도 격식보다는 마음에 닿는 사찰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엔코지로 향하는 사찰 주변 길목을 걸어오며 마주한 풍경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전봇대 아래 모퉁이, 조그만 돌탑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오쿠노인에서 보았던 묘비를 연상케 하는 형상이 앞치마를 두른 채 서 있었습니다. 이미 수천 개의 묘비가 줄지어선 오쿠노인의 길을 순례하고 난 마음에는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호기심이 인도하듯 이끌렸습니다. 지장보살의 형상 아래,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간 아이를 위한 기도의 흔적이 돌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묘비가 아니라,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잇는 교토의 작은 신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빨간 앞치마나 모자를 쓴 돌상은 대개 지장보살님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앞에 놓인 작은 돌무더기가 아이들의 혼을 기리는 무덤이자 위령탑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신앙을 ‘미즈코쿠요(水子供養)’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물아이의 위령’이라는 뜻입니다. 유산이나 낙태, 조산, 혹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을 조용히 달래는 깊은 기도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왜 빨간색일까요. 일본에서 빨간색은 병과 재앙을 막는 색으로, 특히 아이들을 보호하는 색으로 여겨집니다. 빨간 앞치마는 오래전부터 부모가 잃은 아이를 위해 "부디 저승에서도 춥지 않게 해주세요"라며 정성껏 지어 입힌 기도이자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천천히 그 자리로 깊숙이 이끌었습니다. 길목은 단지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에 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사연이 조용히 머무는 자리였습니다.


엔코지와 텐쥬안, 정원의 침묵이 건네는 언어 이전의 말
엔코지 사유의 정원
엔코지의 정원은 단지 아름다움의 총합이 아니었습니다. 한 장면, 한 숨결마다 저마다의 호흡으로 말을 걸어오는 마음의 풍경이었습니다.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물소리가 가만히 마음을 감싸 안았습니다. 바람은 고요했고, 햇살은 적당히 따사로웠으며, 그늘은 한 점의 쉼처럼 머물렀습니다. 모든 것이 넘치지 않고, 과하지 않고, 다만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저는 저도 모르게 속도를 늦추고, 온몸을 고요함에 내맡겼습니다. 문득 떠오른 말, ‘겸허한 받아들임’. 그것은 이 정원이 저에게 먼저 가르쳐 준 태도였습니다. 벤가와(마루)에 앉으면, 마치 우주의 중심처럼 자리한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붙잡습니다. 수백 년을 견뎌온 나무는 그 존재만으로도 정원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 고요하고도 든든했습니다. 주변을 감싼 자갈과 이끼, 그리고 막 초록빛을 머금기 시작한 잎사귀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꾸어진 아름다움이 아니라, 놓아진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억지로 명상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절로 고요해지는 자리. 달마대사의 초상이 걸린 그 마루는 기도와 명상이 굳이 형식이 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면, 격자무늬 창틀 너머로 뒷마당의 초록이 마치 수묵화처럼 펼쳐집니다. 그래서 이곳을 사람들은 ‘액자 정원’이라 부릅니다. 창은 그저 경계를 나누는 틀이 아니라, 침묵을 액자처럼 담아내는 프레임이 됩니다. 그 침묵은 말보다 깊었고, 그 고요함은 소리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원 너머로는 연못이 흐르고, 그 가장자리에 대나무들이 울타리처럼 서 있습니다. 물에 비친 잎사귀의 그림자는 가끔 바람에 흔들리고, 그 흔들림조차 정원의 일부가 됩니다. 다리를 건너면 삼나무 숲 언덕 위로 오를 수 있는데, 거기서 바라본 교토의 전경은 마치 긴 숨 끝에서 마주한 한 줄기 한숨 같았습니다. 푸른 기와의 지붕들, 낮은 능선의 산들, 바람결에 흔들리는 도시의 윤곽. 모든 것이 다 그 정원의 품속에서 조용히 들여다보였습니다. 엔코지의 정원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되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다 보면 나도 나무가 되고, 물소리를 듣다 보면 나의 마음에도 투명한 흐름이 깃듭니다. 누군가의 손으로 섬세하게 놓인 자연. 그러나 그보다 더 섬세한 것은,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나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와비사비의 뜻
와비: 불완전하고 가난하고 비어 있는 가운데서도 평화를 느끼는 마음
사비: 시간의 흐름, 낡음과 쇠잔함 속에 담긴 아름다움
혜민스님의 말씀 "세월이 지나간 것들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마음"은 그저 미학이 아니라, 무너짐을 품고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을 향한 깊은 고개 끄덕임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향한 '엔코지'는 그 태도를 온몸으로 가르쳐주는 공간이었습니다.와비사비 정원의 두 가지 풍경 중 첫 번째인 가레산스이를 감상하는 엔코지의 정원은, 하얀 자갈과 돌, 침묵의 바다를 상징합니다. 물 한 방울 없어도 그 안에는 바다와 파도, 섬과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걸음이 멈추는 순간, 문득 보이기 시작하는 선 하나, 결 하나. 돌의 배치는 이야기이고, 모래의 결은 침묵의 언어였습니다. 정원 속 이끼와 단풍, 흙과 물은 계절과 나이 듦, 그 모든 찬란한 변화에 대한 찬사였습니다. 낡은 돌계단과 젖은 이끼 위로 마치 오래 참았다는 듯 천천히 내려앉는 단풍 한 잎, 바스락 소리조차 내지않고 마음속에 스르르 한 점 위안을 남겼습니다. "있는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




마음을 걷는 정원 텐쥬안
엔코지에서의 사유를 뒤로하고 도착한 텐쥬안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리에게 조용한 마루를 내어주었습니다. 발끝에서부터 풀어지듯 흘러들어오는 정적은, 방금 전까지의 생각의 잔물결마저도 잔잔히 잠재웠습니다. 벤가와(마루)에 앉아 한참을 바라본 정원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한 사유가 정제되어 피어난 ‘마음의 무늬’ 같았습니다. 텐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액자처럼 풍경을 가두고 있던 창틀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초록의 나무들이 정중하게 들어서 있었고, 바람은 그 나뭇잎 사이로 사뿐히 스며들었습니다. 햇살은 마루 끝자락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그 온기 속에서 몸보다 먼저 마음이 누워버렸습니다. 조용히 앉고, 누워보고, 명상하던 그 시간이 텐쥬안이 품고 있는 ‘쉼의 수행’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이 정원의 고요함 속에는 두 개의 결이 겹쳐 흐릅니다. 하나는 ‘선의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황실의 미의식’입니다. 텐쥬안은 난젠지의 탑두寺院로, 황실의 후원을 받아 무로마치 시대에 세워졌습니다. 정원을 단장한 이는 귀족이었고, 그 정원 위에 마음을 내려놓고 수행한 이는 선승이었습니다. 선은 꾸밈을 덜어내는 수행이고, 황실의 미는 그 덜어냄 속에서도 단정함을 놓치지 않는 품격입니다. 와비사비, 즉 겸허한 소박함의 미감은 그렇게 이 공간에 깃들었습니다.
마루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격자 창 너머로 초록의 정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이를 ‘액자 정원’이라 부릅니다. 풍경 속 연못이 흐르고, 수련이 잎을 접고 있으며, 올챙이와 헤엄치는 잉어, 거북이까지 조용히 그들만의 우주를 살아갑니다. 노란 붓꽃 하나가 마지막 꽃잎을 머금은 채 고고히 서 있는 모습은, 그날 햇살 속에서 가장 조용한 기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는 놈을 보십시오.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른다 하고 보아야 합니다.” 풍경은 감상이 아니라 정원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깨어났습니다. 텐쥬안에는 두 개의 정원이 있는데 동쪽의 가레산스이 정원과 남쪽의 연못과 연걸음을 띄우는 치센카이유 정원입니다. 이곳은 황제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황실 스스로가 선 앞에 고개를 숙인 흔적, 그 겸허함이 조용한 벤가와(마루)에 깃들어 있었습니다. 텐쥬안은 바람이 지나가고, 햇살이 앉아 쉬고, 시간이 조용히 눕는 공간입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정원은 고요하고, 나무들은 사유 중 마음을 정원에 맡기는 체험을 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이끼가 자라는 돌과 나무 뿌리들은 시간이 만든 선의 무늬와 같고, 작은 창틀을 통해 보이는 바깥은 고요 속 액자 같은 풍경이며 대숲 사이로 스미는 빛은 한줄기 명상이었습니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는 감각을 전환하여 보는 것을 듣듯이, 듣는 것을 보듯이.화려하지 않음 속의 풍요, 꾸미지 않음 속의 깊이를 느끼며 햇살이 그려놓은 나뭇가지 그림자를 바라보는 순간이 와비사비의 사유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마음안에도 두 개의 정원이 있습니다. 번뇌를 정리하는 가레산수와 감춰진 감정이 물결치는 연못을 봅니다. 한적해서 조용한 연못 속으로 마음을 던지기 좋았습니다.




난젠지 산몬위의 나한들, 불식암을 지나 스미는 바람
텐쥬안을 나와 난젠지의 삼문 앞에 섰습니다. 지나가는 바람 한 자락이 머리결을 스치며 가볍게 다녀갑니다. 그 순간, 나는 바람이 고마워졌고, 문득 그 고마워하는 마음을 바라보았습니다. 깨달음은 문득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깨달음이 다녀가는 순간이 있을 뿐이라고 하지요. 언제나 곁에 있었으나 느끼지 못했던 바람의 존재를 자각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존재의 중심에 닿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삼문 위에 앉은 나한들을 마주하였습니다. 철망 너머로 미소 짓는 얼굴들, 어깨를 돌려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들. 두 손 모아 합장하고, 그 고요한 눈빛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나한을 바라보는 그 순간, 나는 나한입니다.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나한을 봄은 곧 나를 보는 일이었습니다.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과 마주한 그 장면은 나라는 경계조차 희미하게 만드는 투명한 순간이었습니다. 삼문 위에 펼쳐진 풍경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하나마저도 깨달음의 형상이었습니다. 그 모든 떨림이 조용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깨어 있으라고.


임제종의 중심 사찰, 난젠지의 깊숙한 공간으로 들어섰습니다. 가레산스이 정원이 넓게 펼쳐진 마루에 앉아, 우리는 잠시 좌선하며 ‘선’의 화두를 들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장이 되었고, 그 문장을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저 읽히는 대로, 흘러오는 대로 바라보았습니다. 정원은 하얀 모래 위에 조용히 시간을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곡선의 파문처럼 새겨진 모래의 결은 바람과 햇살, 그리고 걸음을 멈춘 자만이 읽을 수 있는, 묵언의 경전처럼 느껴졌습니다. 내 앞에 놓인 돌은 섬이었고, 그 섬은 이 세상과 분리된 마음의 외딴 곳 같았습니다. 흙과 돌, 이끼와 바람이 함께 만들어낸 이 정원은 눈으로만 보는 풍경이 아니라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다라면,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답을 찾기보다 다만 내 귓등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 바람이 곧, 답이었습니다. 선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문득의 자각을 ‘일갈’이라 부릅니다. 한 줄기 바람처럼 스며들어오는 일갈은 망설임 없이 본질을 꿰뚫는 한 마디, 가장 투명한 마음으로 진실을 마주하는 수행자의 언어입니다. 난젠지는 이러한 수행의 중심지로서 무로마치 시대 황실과 막부의 후원 아래, 정치와 예술, 철학이 교차하던 문화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고다이고 천황과 아시카가 다카우지 같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도왔고, 이후 난젠지는 황실의 상징이자 국가의 품격을 담은 선의 궁정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벤가와(마루)에 앉아 고요히 정원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문득 상상해보았습니다. 수백 년 전 이 자리에 앉아 고민했을 한 황제의 마음을. 국가와 인간, 혼란과 평온, 권력과 덧없음 사이에서 그들 또한 자신 안의 우주를 들여다보았을까요. 선종은 바로 그런 ‘바라봄’의 수행입니다. 말보다 침묵, 지식보다 모름, 꾸밈보다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길. 정원의 파문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물결은 아마도 그 옛날 황제의 무릎 위에도,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에도, 고요히 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난젠지의 벤가와에서 ‘이뭣고’라는 화두를 들고 앉았을 때, 우리는 흔들리는 나뭇잎과 물결 속에서도 조용히 바라보는 힘을 배웠습니다. 고요함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도 본래의 맑음을 잃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 그런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난젠지 경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조용한 암자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불식암’입니다. 불식(不識). 문자 그대로는 “모른다”는 뜻이지만, 선의 세계에서 이 말은 단순한 무지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별을 멈추고 마음이 닿지 않는 자리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과 생각을 넘어서는 그 자리는, 알고 모름조차 놓아버린 곳입니다. 불식의 어원은 인도의 달마대사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는 무려 130세의 나이에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와, 양나라 무제의 궁에 초대됩니다. 무제가 묻습니다. “불법의 근본 뜻은 무엇인가?” 달마는 대답합니다. “텅 비어, 성스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제가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달마는 짧게 대답합니다. “모릅니다.” 이 “모릅니다”는 무지의 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알고자 하는 집착, 옳고 그름을 나누려는 분별조차 놓아버린 수행자의 응답입니다. 달마는 무제가 유와 무, 성인과 범부의 개념 속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그 모든 관념을 흔들어 깨뜨리기 위해 “불식”이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긴 것입니다. 선문에서 말하는 ‘불식’은, 알고자 하는 마음조차 버린 자리입니다. “나는 안다”는 집착을 놓고, “모른다”는 생각마저 넘어서, 있는 그대로를 보는 힘. 그것이 선의 본질입니다. 그런 불식의 가르침은 다도와 예술, 삶의 태도 속에서도 스며 있습니다. 불식암, 불식헌, 불식재라는 이름이 붙은 공간들이 그렇고, 심지어 차를 담는 그릇 하나에도 ‘불식’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한 잔의 차, 하나의 침묵, 한 줄기의 바람 속에서 ‘불식’의 마음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불식은 고요함을 향한 도착이 아닙니다. 흐름 속에서도,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본래 맑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선이 말하는 불식의 길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 마루를 떠올립니다. 햇살 아래 앉아 있었던 그 시간, ‘모릅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깊은 사유인지, 얼마나 단순하고 얼마나 어려운 진실인지 다시금 되새깁니다. 그 한마디는, 지금 여기서 다시 묻는 나에게로 돌아오는 화두입니다.


임제종은 12세기경, 송나라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선종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임제종은 직관적 깨달음과 공안 수행, 그리고 마루 위 좌선이라는 수행 방식을 통해 일본 불교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무로마치 시대로 접어들며, 임제종은 황실과 무사 계급 모두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 중심에 선 사찰이 바로 교토의 난젠지였습니다. 난젠지는 가마쿠라 시대인 1291년, 가메야마 상왕(亀山上皇)의 별궁 자리에 창건된 이후, 무로마치 시대에 황실의 후원을 받으며 일본 선종의 중심 사찰로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은 단지 참선의 도량이 아니라, 귀족과 무사들이 정신적 수양과 학문을 위해 찾던 지혜의 정원이기도 하였습니다. 정치와 예술, 수행과 성찰이 함께 머물던 이곳의 고요는 지금도 정원의 파문과 마루의 침묵 속에 아련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400년이 지난 에도 시대 초입, 1601년. 또 하나의 선 사찰이 문을 엽니다. 바로 엔코지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을 통일한 뒤, 무력의 시대를 지나 문치(文治)의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무사들의 리더십을 내면의 수양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그는 유교와 선종을 융합한 교육 공간을 구상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바로 엔코지이며, 이는 단순한 참배의 공간을 넘어 학문과 수행, 실천이 어우러진 배움의 도량이었습니다.
난젠지가 황실의 후광 속에서 귀족의 미학과 선종의 고요를 머금은 공간이라면, 엔코지는 무사들의 내면 수양과 백성을 향한 교육적 이상이 담긴 실천의 공간이었습니다. 둘은 시대와 후원자의 결이 다르고, 건축과 정원의 분위기 또한 다르지만, 결국 모두 ‘마음 하나를 바로 보려는 길’ 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같은 정신의 물줄기 위에 놓인 두 개의 배와도 같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발걸음은 그 물줄기의 끝자락, 정토종의 깊은 호흡이 머무는 사찰로 향합니다. 젠린지—시간이 고요히 흐르는 정원 속, 고개를 살짝 돌린 아미타불의 시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젠린지의 고개 돌린 아미타불, 나를 돌아보는 시선의 부드러움
엔코지에서 시작된 선종 사찰들의 깊은 사유의 여정은, 그날 오후 잠시 따스한 품에 안기듯 젠린지를 찾으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젠린지(禪林寺)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더 친근하게 *에이칸도(永観堂)*라 부릅니다. 천년의 시간이 켜켜이 스민 이 사찰은,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시선으로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젠린지의 시작은 853년, 진언종의 쿠카이 스님의 제자 신쇼(真紹)에 의해 세워진 데서 비롯됩니다. 이후 11세기, 이 사찰의 제7대 주지였던 에이칸(永観) 스님은 중생을 향한 깊은 염불 수행을 통해 정토종의 신심을 이곳에 정착시켰습니다. 그의 법호에서 유래한 ‘에이칸도’라는 이름은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부처의 자비를 부르는 또 하나의 호명입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겨울, 염불행도 중이던 에이칸 스님을 따라 본존 아미타여래상이 수미단에서 내려와 함께 걸었다고 합니다. 스님이 멈추자, 부처는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합니다.
“에이칸아, 늦었구나.”
그 순간을 형상화한 불상이 바로 *미카에리 아미타여래(見返り阿弥陀如来)*입니다.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처는 왼편 어깨 너머로 세속을 향한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시선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 지체되고 늦은 걸음들을 기다리는 눈빛이었습니다. 그 불상이 모셔진 극락전에 이르기 위해서는 ‘와룡행랑(臥龍廊)’이라는, 용이 뉘인 듯 굽이진 목조 복도를 따라 올라야 합니다. 겨울의 찬바람에 발끝이 시릴 만큼 서늘한 마루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면, 마침내 높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처님의 시선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눈빛은 따뜻했습니다. 부드러웠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했습니다.
“지금도 괜찮다. 네가 늦었다 해도,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그 날의 우리 발걸음도 그랬습니다. 무릎은 아프고,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춘 그 순간이 곧 도달한 순간이라는 것을, 아미타불의 시선이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젠린지는 거대한 사상이 아니라, 작고 따뜻한 위로로 기억됩니다. 마음이 마음에게 주는 말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도반들은 다보탑으로 이동하고, 몇몇 도반들은 연못 앞에 멈춰 섰습니다. 햇살이 강해지는 오후였지만, 연못의 물결은 고요했고, 그 위로 짙은 초록과 붉은 단풍이 서로의 색을 물들였습니다. 그날, 가장 붉게 타오른 단풍 한 그루는 마치 누군가의 기다림처럼, 오래된 염원을 담아 고요히 서 있었습니다. 연못 위에는 부드러운 곡선의 다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둥글게 휘어진 그 다리는 하늘을 닮은 물 위에 그려진 또 하나의 미소 같았습니다. 물 아래 비친 다리의 반영과, 위에 선 도반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현실과 환상이 조용히 맞닿았습니다. 그 순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들 사이로 조용한 울림이 전해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젠린지의 정원은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무는 마음을 다듬는 공간이었습니다. 뒤돌아보는 아미타여래의 시선은 그렇게 우리를 다리 위에서 마주했습니다. 돌아보는 그 눈빛처럼, 우리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떠나는 발걸음은 느렸고, 고개를 돌리며 한 번 더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그날 젠린지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아마도 이 조용한 '멈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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