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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행복

<더 납작 엎드릴게요>(김은영.2024)

by 사붓이 202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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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감독은 일상 속 사소한 감정의 틈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내는 섬세한 시선과 유쾌한 감각을 지닌 창작자입니다. 단편 시절부터 현실을 꼼꼼히 직조하는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작품들로 주목받았으며, 이번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그녀의 첫 장편 데뷔작입니다. 감독은 "출근에서 퇴근까지, 입사에서 퇴사까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만 되풀이하는 직장인의 일상"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감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복잡한 구호 없이도, 스스로를 가장 낮은 자세로 내어주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의미 있고 소중한지, 김은영 감독은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그 진실에 다가갑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정동진영화제에서는 관객들이 직접 동전으로 투표해 수상작을 정하는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감독의 작품이 관객의 공감과 웃음을 끌어내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  

 

법당 옆 출판사에서 입사 5년 차, 여전히 막내인 혜인은 '습관성 굽실 증후군'에 걸렸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보고, 조심스레 말끝을 흐리는 이 시대 수많은 혜인들처럼 말입니다. 김은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그 ‘낮고 납작한’ 자세 속에 깃든 깊은 체념과 작은 희망의 몸짓을 유쾌하게 담아냅니다.
영화는 교정·교열 담당 ‘업무’로 불리는 혜인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상사가 무려 스님인 출판사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출세’보다 ‘수행’에 가까운 직장 생활을 상징합니다. 혜인은 직함도 없이 ‘보살’이라 불리며 책의 마지막 오탈자를 잡아내고, 상사의 말끝을 정리하고, 자신의 감정을 교열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혜인을 단지 '가엾은 존재'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유쾌한 굴복은 내면의 탄력성과 회복력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사찰 출판사가 직장이라니 공양간에 근무하고 싶어서 면접을 보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나는 식당 조리사로 10년의 경력이 있었지만, 마음은 늘 정처 없었습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어느 주방이든 옮길 수 있다는 자유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선택지는 점점 좁아졌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은 ‘더는 가고 싶은 곳이 없다’는 체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찰에서 공양주로 일하는 광고를 보고, 그때의 나는 다시 무언가에 의미를 붙잡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면접을 보았고, 스님께서 허락도 하셨지만 결국 양로원과의 계약이 먼저 성사되어 다시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것이 미안했지만, 솔직히 말해 꼭 일하고 싶던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새벽 네 시부터 시작되는 고된 일정과 명확하지 않은 노동 경계선이 내 안의 어떤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젊었습니다. 허리도 튼튼했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때 내가 사찰에서 공양주로 일하며 ‘수행하듯’ 지냈다면, 나의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고요.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그런 질문을 조용히 던져주는 영화입니다. 삶의 정답을 가르치지 않지만, 어느 날 문득 일상 속 ‘왜’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죠.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내가 이만큼 굽실거리면서 지켜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분석과 비평이라는 고도의 지성의 세계에서 한걸음 물러나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물러남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성장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나를 살펴 쓰는 비평' 혹은 '비평으로부터 나를 구해내는 글쓰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에 수원 미디어센터 정기상영의 주제는 우리들은 자란다였습니다. 한 달간 열 두편을 상영했는데 모두 감상했습니다. 굿 윌 헌팅부터 시작한 한 달간의 성장 여정은 때론 감동과 눈물로 훌쩍 마음이 큰 봄날이었습니다. 여름이 오는 문턱에서 봄날의 성장이야기를 쓰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아이와 함께 시작합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부끄러움과 유머 속의 자존감을 회복 시켜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 해 8월 상영작입니다만 저의 성장 영화로 시작하게 된 근원이 되기에 이 영화부터 에세이를 쓰기로 했습니다.  
주방에서 조리원으로 일했던 지난 날은 허리를 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늘 눈치를 보았고 말끝은 흐릿했습니다. 돌아보면 그 모든 굽실거림은 굴복이 아니라 나를 지켜내기 위한 그저 조용히 버텨내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혜인을 보며 웃고, 울고, 공감했습니다. 코미디라는 외피 속에서 내 속살이 부끄러울 정도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위로만이 아니라 자존감 회복이라는 성장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혜인의 습관성 굽실 증후군을 보며 웃었지만 어느 순간 그 익숙한 자세가 내 어머니의 그림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말기암 진단 후, 어머니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큰 병원 진찰을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진찰로 무엇이 달라지진 않으리란 걸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그 병원, 그 진단을 통해 마지막 희망의 끈을 손에 잡아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진찰을 받기 위해 차를 타고 가는 길, 접수를 기다리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굽신거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 자세는 그 날 하루의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어머니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절대 굽신거리며 살지 않겠다고 그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고 자식이 커가면서 어느새 나도 굽혀지게 되었습니다. 허리 통증이 심해진 요즘 당당한 가슴을 유지하느라 항상 허리를 펴는 자세 교정을 합니다. 이 자세 교정은 어쩌면 어머니의 삶과 내 삶의 사이에서 어떻게 나를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작은 수행 같습니다. 이렇게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혜인과, 어머니, 나의 굽신거림이 모두 겹쳐져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몸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꿈에 나타난 달마대사였습니다. 야근을 하다 깜빡 잠든 혜인에게, 검은 눈썹에 붉은 옷을 입은 달마대사가 찾아옵니다.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김밥 쪼가리나 먹으면서 야근을 해!” 달마대사의 돌직구에 혜인은 되려 외칩니다. “천지가 개벽을 해도 이 일은 끝내야 해요!” 그 한마디가 참… 나 같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더 열심히, 더 끝까지, 더 납작하게. 그러자 달마대사가 말합니다.
“스님, 제 마음이 너무 불안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너를 편안케 하리라.”
그건 진짜 선문답이었습니다. 꿈의 장면은 너무 코믹해서, 피식 웃고 말았죠.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 장면은 혜인의 꿈이 아니라 내 안의 꿈 같았습니다. 나 역시 종종 묻고 싶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그럴 때마다 영화 속 달마대사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 말은 마치, “그걸 억누르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그냥 나에게 보여줘.”라는 뜻처럼 들렸습니다. 불안은 죄가 아니라, 삶을 꾸려나가는 마음의 재료라는 것을 영화는 이렇게 유쾌하게, 따뜻하게 알려줍니다.
선배들의 꽃꽃이와 그림 그리기 자랑에 혜인은 용기를 내어 글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컴퓨터를 펼쳐놓지만, 결국 잠이 들고 맙니다. 영업이 끝났다는 직원의 말에 화들짝 깨고,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그래도 법보는 나왔고, 조심스레 뿌듯한 마음이 일던 그때, 보살님이 글이 잘못됐다며 언성을 높입니다. 순간 당황한 혜인을 향해 선배들이 조용히 일어섭니다. 아무 말 없이 그 곁에 서서, 나직한 목소리로 사실을 바로잡아줍니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내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 건네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처음으로 누군가가 내 편이 되어주는 그 감각. 불안한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그 작은 연대 안에서 피어났습니다.
 

글을 쓰며 인생에 스며든다

정년 퇴직을 맞이하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무작정 시작한 프로젝트를 돌아봅니다. 2월부터 휴식기에 들어가 한 달을 마음 추스르며 광교산을 조금씩 걸었습니다. 허리 통증으로 멈춘 시계는 내 일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간절함은 3월의 '우리들은 자란다'라는 주제의 성장영화들에 시선을 멈추게 했습니다. 열두 편의 영화를 감상하며, 훌쩍 자란 마음은 희망의 봄을 맞이했습니다.
4월부터 5월까지 영화평론 글쓰기를 배우고자 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첫 수업부터 나는 직면하기 어려운 내 그림자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영화를 보고 감상을 적으면 될 줄 알았는데, 보고 싶지 않은 무의식의 그림자, 그 영역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치유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작정 쓰며 무의식을 길어올리던 치유 글쓰기와 달리, 영화평론 글쓰기는 먼저 분석하고 나서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는 의식 또한 필요했습니다.
젊은 시절, 항상 남을 의식하고 인정 욕구에 매달려 살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계속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한 갈등도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되고 싶은 간절함이 나를 계속 걷게 했고, 평온했던 무의식의 바다는 어느새 성난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영화 매체를 활용한 글쓰기에는 평론, 비평, 에세이 등 다양한 방식이 있었고, 나는 에세이를 선택하며 수행과 맞닿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실제로는 평론인지 비평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과정이며 수행의 일부라고 믿으며 글쓰기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문제는 영화 수업의 커리큘럼이 너무도 촘촘하고 완벽했다는 점입니다. 수업을 마친 5월에는 영화의 역사와 현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일부이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이 영역 안에서, 나는 영화 속에서도 삶을 발견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연출은 분명 삶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이 삶을 반영하듯 말입니다. 정신분석과 들뢰즈 철학을 영화 속에서 만나며, 예전처럼 감정이입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순수한 감상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영화의 기술적 기법과 이론을 살펴보게 되었고,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기보다 분석하려는 태도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본다'는 의식은 큰 부담이 되었고,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 철학과 이론을 무리하게 들이대며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나만의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평론 글쓰기에 대해 피드백을 주시며, 어떤 부분은 유치원 아이가 쓴 글처럼 보이고 어떤 부분은 전문 평론가처럼 잘 쓴 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를 지칭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것이 내 글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영화 수업 한 챕터를 마치고 열심히 달려오던 어느 날, 두세 살 무렵의 내가 양말을 혼자 신으려 바둥거리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내 능력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내면에서는 또 다른 자아인 통제자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그 아기를 격려하고 도와주었어야 할 젊은 날의 어른인 나는, 오히려 아기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기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은 보호자의 사랑이라는 공간이었음을. 나는 그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청소년기를 영화로 치유하다가, 어느덧 갑작스레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감정이 글로 드러난 것이지요.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영화들을 감상하면서 어려움을 느꼈지만, 사실 그것은 내 안에 이미 있던 이론들이었습니다. 단지 연결되지 않았을 뿐이었고, 연결되는 순간 내 글은 전문가의 글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빠졌습니다. 기술적인 글쓰기만 하게 되었고, 마음에서 우러난 글은 점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이중적인 태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성장 영화를 감상합니다. 영화 수업을 마친 지금, 철학적인 요소를 어렵게 설명해봐야 누가 읽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시절, 관련 법률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지만 고객에게 쉽게 설명하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나는 젊었고, 내 말이 옳다는 자만에 빠져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나는 그 반복을 다시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걸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을 잘 아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능력이라는 걸요. 아기가 제때 받았어야 할 사랑을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주어야,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글은, 어떤 날은 전문가처럼 날카롭고, 어떤 날은 유치원 아이처럼 순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지금 나의 글쓰기입니다.
 

자세를 고치며 , 삶을 쓴다

영화의 마지막, 혜인은 법당에 가서 조용히 절을 올립니다. 아무 말 없이, 고요하게.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오래전 나의 새벽이 떠올랐습니다. 다짐 하나로 시작했던 천일기도. 새벽 다섯 시, 차가운 공기 속에서 108배를 하던 시간. 처음엔 몸이 무너졌고, 이내 마음이 낮아졌습니다. 절은 ‘굴복’이 아니라, 내가 나를 향해 다가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엎드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지는 게 아니라, 더 단단히 나를 세우기 위해 바닥을 딛는 일이었습니다.
“원하시는 만큼 누르세요. 제가 더 납작 엎드릴게요.”
혜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낮은 자세를 기꺼이 택한 사람의 고요하고 강한 목소리입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 위, 겨우 손등 하나 두께만큼의 좌복이 혜인을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얇은 받침 덕분에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깊이 엎드렸느냐가 아니라, 엎드린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가였습니다.
굽신거리던 어머니의 허리도, 혜인의 습관성 고개 숙임도, 그리고 나의 천일 동안 108배도, 결국은 같은 마음의 모양이었음을. 삶은 끝내는 자의 몫이고, 엎드린다는 건 결코 가엾은 일이 아닙니다. 나를 낮추며 삶의 문장을 써내려가는 입니다. 무엇보다 나의 글쓰기는 타인과 사랑으로 연결되기를 목표로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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